전생에서 헬리아는 애시포드 가문의 마지막 달의 혈통 마녀로서 손우드 마녀 일족의 후계자 드레이코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7년 동안 그녀는 목숨을 걸고 그를 지켰고, 애시포드 가문의 기반마저 희생하며 그를 한 걸음씩 마왕의 자리로 올려놓았다.
하지만 드레이코는 떠돌이 마녀 닉사를 자신의 생명의 은인으로 착각했고, 그녀만을 감싸고 편들었다.
핏빛 달이 가장 강렬하게 떠오른 그날 밤, 그는 사람들 앞에서 혈맹을 찢어버리고 닉사와 손을 잡아 헬리아를 제단에 못 박았다.
붉게 달군 낙인이 그녀의 몸에 배신자의 문양을 새겼고, 달의 혈통이 지닌 근원의 힘은 그녀의 피에서 강제로 뽑혀 나와 수많은 은빛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닉사는 비웃으며 말했다.
“네 남편도, 네 가문도, 그리고 네 모든 것은 이제 전부 내 것이 될 거야.”
죽음을 눈앞에 둔 순간, 드레이코의 숙부이자 온 일족에게 '지팡이를 잃은 자'라 불리며 버림받았던 전대 마왕 카이우스 손우드가 피의 불길을 가르며 처형대로 뛰어올랐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그녀를 대신해 칼을 막아섰고, 헬리아는 그의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눈물을 흘리며 헬리아는 달의 여신에게 간절히 기도했다.
"제게 단 한 번만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세요."
다시 눈을 뜬 그녀는 열여덟 살의 핏빛 달의 연회로 돌아와 있었다.
핏빛 달 평의회의 장로들이 혈맹의 신탁을 낭독하는 가운데, 드레이코는 자신이 선택받을 것이라 굳게 믿으며 그녀가 울면서 자신에게 달려올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헬리아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약혼을 파기한 뒤, 핏빛 달의 연회장을 가로질러 그림자 속에 서 있던 카이우스에게 다가가 당당히 선언했다.
“제가 선택한 사람은 이분입니다.”
이번 생에서 그녀는 직접 카이우스를 속박한 오래된 맹세의 봉인을 풀어 진정한 마왕을 왕좌로 되돌릴 것이다.
닉사의 위선적인 가면을 찢어버리고 그녀를 구름 위에서 진흙탕으로 끌어내릴 것이다.
그리고 전생의 기억을 되찾은 드레이코에게 자신과 카이우스가 함께 마왕의 왕좌에 서 있는 모습을 똑똑히 보여 주며, 평생 닿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줄 것이다.
전생에 그녀가 사랑을 잘못 바친 남자는 이번 생에서는 그저 무릎 꿇고 그녀를 올려다볼 자격밖에 없다.
그리고 원래는 평생 그녀를 지켜 주었어야 할 그 남자의 손을, 이번에는 그녀가 먼저 잡으며 말한다.
“이번 생은 내가 당신을 지킬게.”